선교사 가정에 힘 더하기

4월 21일 주일, 서울광염교회에서 20년간 부목사로 사역을 하고, 캄보디아에 있는 프놈펜광염교회로 파송을 받은 김치영 선교사님이 하늘목교회에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눴습니다. 

김 선교사님과 저는 서울광염교회에서 함께 사역했던 동료이기도 합니다. 

함께 한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서로 말이 잘 통하고, 결이 같아서 금세 친하게 지냈습니다. 하늘목교회를 개척할 때도 고민 되는 문제를 두고 함께 의논한 날들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하늘목교회가 성장하여 해외선교를 가게 된다면 김 선교사님이 있는 캄보디아를 가장 먼저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꿈을 이뤄주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된 김 선교사님 가정에 교회의 사랑으로 힘을 더합니다. 이 일을 위해 지정된 헌금 30만원과 여러분이 드린 십일조에서 10만원을 더해 40만원을 김 선교사님 계좌로 송금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래는 캄보디아로 부름 받은 김 선교사님의 블로그 글 중 일부입니다.

첫 단기선교, 캄보디아 시소폰

2002년 7월 15일~20일 해외 단기선교를 캄보디아로 갔다. 첫 해외 선교라 엄청 기대하고 설렜다.

무언극을 준비하고, 워십과 태권도 등 선교지에서 보여줄 많은 것을 준비하고 볼펜과 부채, 옷들도 준비했다.

그때 우리 교회가 캄보디아 시소폰이라는 지역에 광염 대학을 건립하고 있었다. 교회는 시소폰에 선교팀을 파송했다. 80여 명의 청년들이 시소폰이라는 작은 마을을 복음으로 덮었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모였다. 준비한 선교무용, 무언극을 하며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나의 마음은 뜨거웠다. 그 뜨거움을 주체하지 못해서 차를 타고 갈 때에도 사람들에게 “쯔으 쁘레아 예수!!”(예수 믿으세요)라고 외쳤다.


날씨는 무더웠고 마치 우리는 커다란 사우나에 갇힌 느낌이었다. 이러한 날씨는 몇 명의 여자 청년들과 이석진 목사님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내 안에 일어나는 성령의 뜨거운 감동과 열정이 그때의 날씨보다 더 뜨거웠던 것 같다. 그렇게 복음을 전할 때 내 안에 이런 음성이 찾아왔다. “치영아! 캄보디아에 선교사로 오지 않을래?” 이 음성은 내가 음악대학교 4학년 때 앞으로 진로를 고민하고 기도할 때 내 안에 말씀하신 내용과 같았다. 무대 연출을 공부하고 싶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치영아!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했으니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좋겠어!”라고 말씀하셨다.


캄보디아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콜링에 청년이었던 나는 이렇게 응답했다. “주님, 저는 아직 한국에서 할 일이 있고 서울광염교회가 너무 좋아요!”

그렇게 단기 선교가 끝났고 시간이 흘러 나의 캄보디아를 향한 열정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2003년에 서울광염교회 교역자가 되었다.



캄보디아 사역 방문

교역자가 되고 나서 하나님은 나를 캄보디아에 자주 보내셨다. 무려 네 번이나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교회의 사역으로 방문하게 되었는데 사역으로 만나는 캄보디아 선교사님들은 내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을 건네곤 했다. “목사님, 캄보디아로 오세요. 선교사로 오세요.”라는 인사와 같은 콜링이었다. 그때마다 “저는 아직 조목사님께 배울게 많아서요. 저는 서울광염교회가 너무 좋아요.”라고 거절했었다.


기도하기 시작하다. 그리고 코로나

이스라엘 연구년이 끝난 후 2020년 1월, 앞으로의 사역을 놓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옵소서”라고 아내와 함께 기도했다. 기도의 시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코로나로 길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말씀하시고 들려주셨다.



부르심에 응답하여 “네, 가겠습니다.”

2022년 5월, 하나님은 캄보디아로 오라고 부르셨다. 이석진 목사님이 나를 잠깐 보자고 했다. 그리고 캄보디아 권성대 선교사님이 내년에 은퇴를 하시는데 프놈펜 광염교회에 김 목사가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셨다. 이 목사님은 김 목사가 그곳에 가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순간 내 안에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말씀하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2002년 7월에 내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그 순간 떠올라 바로 이석진 목사님에게 “네,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부르심에 응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기쁨으로 순종하기까지 하나님은 그렇게 날 준비시키시고 기다려주셨다. 날 향한 그분의 계획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서울광염교회에서 행복한 목사로 사역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캄보디아의 선교사로 날 인도하신다. 선교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들에 충성된 일꾼이고 싶다.


김치영 선교사

 

4월 21일 주일, 서울광염교회에서 20년간 부목사로 사역을 하고, 캄보디아에 있는 프놈펜광염교회로 파송을 받은 김치영 선교사님이 하늘목교회에 

방문하여 함께 예배를 드리고 교제를 나눴습니다. 김 선교사님과 저는 서울광염교회에서 함께 사역했던 동료이기도 합니다. 

함께 한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서로 말이 잘 통하고, 결이 같아서 금세 친하게 지냈습니다. 하늘목교회를 개척할 때도 고민 되는 문제를 두고 함께

의논 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하늘목교회가 성장하여 해외선교를 가게 된다면 김 선교사님이 있는 캄보디아를 가장 먼저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 꿈을 

이뤄주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캄보디아 선교사로 파송된 김 선교사님 가정에 교회의 사랑으로 힘을 더합니다. 이 일을 위해 지정된 헌금 30만원과

여러분이 드린 십일조에서 10만원을 더해 40만원을 김 선교사님 계좌로 송금합니다. 사랑합니다. 


아래는 캄보디아로 부름 받은 김 선교사님의 블로그 글 중 일부입니다.


첫 단기선교, 캄보디아 시소폰

2002년 7월 15일~20일 해외 단기선교를 캄보디아로 갔다. 첫 해외 선교라 엄청 기대하고 설렜다.

무언극을 준비하고, 워십과 태권도 등 선교지에서 보여줄 많은 것을 준비하고 볼펜과 부채, 옷들도 준비했다.

그때 우리 교회가 캄보디아 시소폰이라는 지역에 광염 대학을 건립하고 있었다. 교회는 시소폰에 선교팀을 파송했다. 80여 명의 청년들이 시소폰이라는 작은 마을을 복음으로 덮었다. 동네 아이들이 모여들고 사람들이 모였다. 준비한 선교무용, 무언극을 하며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복음을 전할 때마다 나의 마음은 뜨거웠다. 그 뜨거움을 주체하지 못해서 차를 타고 갈 때에도 사람들에게 “쯔으 쁘레아 예수!!”(예수 믿으세요)라고 외쳤다.

날씨는 무더웠고 마치 우리는 커다란 사우나에 갇힌 느낌이었다. 이러한 날씨는 몇 명의 여자 청년들과 이석진 목사님을 쓰러뜨렸다. 그러나 내 안에 일어나는 성령의 뜨거운 감동과 열정이 그때의 날씨보다 더 뜨거웠던 것 같다. 그렇게 복음을 전할 때 내 안에 이런 음성이 찾아왔다. “치영아! 캄보디아에 선교사로 오지 않을래?” 이 음성은 내가 음악대학교 4학년 때 앞으로 진로를 고민하고 기도할 때 내 안에 말씀하신 내용과 같았다. 무대 연출을 공부하고 싶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치영아!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했으니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좋겠어!”라고 말씀하셨다.

캄보디아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콜링에 청년이었던 나는 이렇게 응답했다. “주님, 저는 아직 한국에서 할 일이 있고 서울광염교회가 너무 좋아요!”

그렇게 단기 선교가 끝났고 시간이 흘러 나의 캄보디아를 향한 열정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리고 2003년에 서울광염교회 교역자가 되었다.



캄보디아 사역 방문

교역자가 되고 나서 하나님은 나를 캄보디아에 자주 보내셨다. 무려 네 번이나 캄보디아를 방문했다.

교회의 사역으로 방문하게 되었는데 사역으로 만나는 캄보디아 선교사님들은 내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을 건네곤 했다. “목사님, 캄보디아로 오세요. 선교사로 오세요.”라는 인사와 같은 콜링이었다. 그때마다 “저는 아직 조목사님께 배울게 많아서요. 저는 서울광염교회가 너무 좋아요.”라고 거절했었다.



기도하기 시작하다. 그리고 코로나

이스라엘 연구년이 끝난 후 2020년 1월, 앞으로의 사역을 놓고 다시 기도하기 시작했다. “나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옵소서”라고 아내와 함께 기도했다. 기도의 시간,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시간은 코로나로 길어졌다. 하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말씀하시고 들려주셨다.



부르심에 응답하여 “네, 가겠습니다.”

2022년 5월, 하나님은 캄보디아로 오라고 부르셨다. 이석진 목사님이 나를 잠깐 보자고 했다. 그리고 캄보디아 권성대 선교사님이 내년에 은퇴를 하시는데 프놈펜 광염교회에 김 목사가 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으셨다. 이 목사님은 김 목사가 그곳에 가면 너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순간 내 안에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말씀하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리고 2002년 7월에 내게 말씀하셨던 하나님의 음성이 그 순간 떠올라 바로 이석진 목사님에게 “네, 가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부르심에 응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기쁨으로 순종하기까지 하나님은 그렇게 날 준비시키시고 기다려주셨다. 날 향한 그분의 계획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서울광염교회에서 행복한 목사로 사역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캄보디아의 선교사로 날 인도하신다. 선교의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들에 충성된 일꾼이고 싶다. 김치영 선교사

 

김치영 전희승 선교사 [사진 제공 서울광염교회]